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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씁쓸한

"정상"이란 무엇인가, 『이상한 정상가족』

마음에 들지도 않고, 다시 읽고 싶진 않은 책이다. 하지만 마음에 들어오는 문구는 많았다.

 

 

이놈의 티스토리 에디터 자꾸 뻑나서 몇 번을 다시 적는지 모르겠다.

임시저장도 안되고, 수시로 발행을 눌러가며 수정해야 하는 모양이다.

 

 

 


 

1. 가족은 정말 울타리인가

  자식을 소유물로 보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중점으로, 체벌이 어떻게 학대가 될 수 있는지, 한국에서의 학대와 체벌에 대한 인식과 법을 다룬다. 그 예로 방임과 과보호, 이 양극단 모두가 아이에게 학대가 될 수 있음을 얘기한다. 또한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이 단어는 가족을 소유물로 보지 않고서는 나타날 수 없으며, 엄연한 인권 침해를 온정의 대상으로 만드는 단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라는 사회적 문제를 가족의 비극으로 만들어 버린다. 남은 가족 구성원이 사회를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일가족 살해를 저지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동반자살 대신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긴 단어보다 아예 일가족살해, 가족몰살이라는 단어로 대체하는 게 좋아보인다. 자녀만 죽이는 게 아닌 걸.) 너무 강력한 "친권"도 이러한 현상에 책임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주장한다. 친""은 권리라고. 본문에서는 주장한다. 친권은 의무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선 의무도 다해야 한다고. 부모는 자식을 잘 키워야 할 의무가 있다.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 - 넬슨 만델라 p.5

기성세대는 그 시대의 제한된 문화적 환경에서 자녀를 가르쳤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그 방법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p.35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p.40

공공의 개입이 닫힌 방문 안에까지 이루어질 때에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고 자유로워지는 약자들이 가족 안에 있기 때문이다. p.57

중학생부터는 생활기록부에 잘 기록되기 위한 생기부 인생을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중략) 그래서 제일 덜 급하고 점수화되지 않을 일들이 가장 먼저 저희들의 인생에서 지워집니다. 어쩌면 행복은 지워진 일들 속에 있었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p.68

친권은 부모가 자녀를 보호하고 가르칠 ‘의무’지 자녀에 대한 처분 ‘권리’가 아니다. (중략) 법률상의 친권은 ‘자녀를 보호하고 교양할 의무’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고 친권자인 부모가 이러한 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 친권은 박탈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p.105

호주 대법원은 이건 친권자인 부모라도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 되고 국가가 결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여러 분야 전문가가 참여해서 논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동 최선의 이익의 원칙’에 근거하여 법원이 판단하라고 결정했다. p.106

친권, 부모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 p.107

친권이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는 시각이 가장 또렷하게 반영된 제도는 2007년 유럽가족법위원회가 만든 ‘유럽연합 친권법 원칙principles of European Family Law Regarding Parental Responsibilities’이다. 제목에서부터 부모의 권리parental rights 대신 부모의 의무Parental Responsibilities라는 용어를 썼다. 권리보다 의무에 방점을 찍고 친권을 바라보는 것이다. 유럽연합 친권법 원칙이 부모의 의무 중 하나로 자녀와의 정서적 관계 유지 의무를 규정했고,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배우자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면 친권이 상실되도록 한 것도 눈에 띈다. 일본에서도 배우자에 대한 폭력이 ‘자녀의 심신의 성장, 인격의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고 해석하면서 아동학대에 포함하는 등 폭력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범위를 확대해가는 추세다. p.108

아이들은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부모 권리의 객체였을 뿐이다. (중략) 가족이 그 안에 속한 개개인, 특히 아이들의 차별 없는 권리와 평등을 보호해줄 수 있으려면 친권이 권리보다는 의무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보다 많은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 p.109

 

2. 한국에서 '비정상' 가족으로 산다는 것

  혼외출산에 대해 반대하는 시선(이건 외국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비단 한국만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어렵다.)이 75.8%. 기존 가족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야만 정상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벗어나면 비정상과 부도덕으로 몰아세우는 한국의 가족주의 때문에 미혼모가 아이를 유기하거나 키우지 않는 이유라고 주장한다. 미혼모에 대한 지원과 현실을 얘기하며 여성이 출산과 양육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해당 2챕터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데 글쓴이는 미혼부에 대한 차별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미혼부가 아이를 혼자 키우고 싶어도 법적인 허점으로 인해 한계에 부딪힌다는 뉴스도 있었다. (링크1)[각주:1] (링크2)[각주:2] 아무리 수가 적다해도 아예 무시해버리는 건 이들이 주장하는 '소수자 존중'에 아예 어긋나는 것 아닌가. 이런 이중잣대때문에 '여혐이 사회에 만연하다'를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싫다. 이 뒤로 입양, 특히 해외입양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외입양의 수많은 케이스가 양육을 포기함으로 인해 이뤄지기 때문에 이러한 순서로 배치했는지 모르겠으나 책 전체가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다. 그 후로는 인종차별과 함께 다문화가정에 대해서도 다룬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이틀동안 해외입양에 대해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뉴스가 나왔다. (문제제기하는 해외입양자들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나아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링크3)[각주:3] (링크4)[각주:4] 입양됐다가 양부모에겐 학대당하고 시민권이 없어 한국으로 추방되고. 인생이 망가진 것이나 다름 없는데 한국 법원에 2억 손배소송? 2억으로 그 평생이 배상이 되나...? 하... 이건 정말 배상을 받겠다는 것보다는 전례를 남기기 위한 행동이라고 본다.

  본문에서, 미혼모를 언급하면서 위기임신이라는 단어가 잠깐 나오는데, 확 와닿는 단어도 아니거니와, 검색으로도 잘 나오지 않는 단어다.

네이버에 위기임신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상담센터의 위기임신 상담 링크가 먼저 나오지만, 위기임신이 무엇인지 설명하지도 않고 있고, 대부분 "임신위기"에 대한 글이었다. 쌍따옴표를 이용해 완전 일치 검색을 해야 조금 나온다. 구글에서는 그나마 설명한 글이 나오고는 있지만 그 구글에서조차 완전 일치 검색으로 3,480건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건 그들만의 리그에 쓰이는 단어라는 느낌. 심지어 "그 모부님"마저도 8,540건이 나온다...


성인과 달리 취약한 특징을 가진 아이들의 인권에 있어서는 ‘부모’의 지위에 대한 차별이 곧 아이에 대한 차별이다. p.125

“비혼과 무자녀 가족이 늘어난 요즘 결혼이 출산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출산과 양육을 잇는 정책이 필요하다.” -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 p.127

차별의 실상을 드러내려고 편견이 배인 용어를 쓰는 것이 좋은 선택은 아니다. p.129

성공한 입양인은 덥석 끌어안고 환호하고 불운한 입양인은 부적응자 취급을 하는 우리 사회. 이래도 되는 것일까. p.132

제인 정 트렌카가 이끄는 '트랙'TRACK(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아들의 모임)을 비롯하여 국가에게 사과를 받아도 시원찮을 이들이 모여 현수에게 미안하다고 집회를 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데, 현수가 숨지기 9개월 전 네덜란드에서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에 서명한 정부의 어느 누구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데, 오로지 이들만 미안하다고 했다. p.145

 

 

3. 누가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을 규정하나

  한국에서 가족이 중요하게 된 이유로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정부가 해야 할 사회적 역할을 가족이 담당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국가가 가족주의를 조장하게 되었다. 그 결과, 부모의 신분이 자녀에게 세습되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사교육이 과열되고 개개인의 경쟁이 아니라 가족의 경쟁이 되었다. 수많은 유사가족 속에서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별하고 내집단과 나를 동일시하면서 외집단에 대해서는 배타적 태도를 갖게 된다. 수많은 차별도 이러한 배타성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4. 가족이 그렇게 문제라면

  (한국에서)아이를 대하는 태도, '정상'가족이란 말이 나타내는 것, 한국에서 가족이 차지하고 있는 역할과 가족주의,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할 일을 다룬다. 체벌금지법이 부모와 사회에게 끼치는 영향을 스웨덴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고, 해법 또한 스웨덴의 사례에서 찾아본다. 그렇게 공적개입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사랑의 매!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다 자기네 문화적 전통이라고 말해요. 그걸 문화적 특성, 종교적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체벌을 옹호하는 가장 끈질긴 논리죠. 스웨덴에서도 그랬어요." *유엔 아동권리협약보다 10년 빠르게 처벌을 금지하는 법을 만든 스웨덴에서조차. p.204

19세기 후반에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이 법으로 금지됐으며 20세기 초반에는 고용주의 피고용인 폭행이 법으로 금지됐다. p.208 ;

와... 고용주가 피고용인을 때리는 게 말이나 되는 것인가???? 게다가 남편의 폭력보다 더 나중에 금지되었다니. 여성의 인권보다 노동자의 인권이 더 낮았던 과거구나. 2019년을 살아가는 내게는 정말로 이해가지 않는 상황이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믿음이 팽배했던 시절 젊은 엄마였던 그 여성은 어느 날 어린 아들이 말을 듣지 않자 매로 가르치려고 아들에게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시킨다. (중략) 그런데 이 소년은 회초리를 찾으러 나갔다가 한참 만에 울면서 돌아와 작은 돌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회초리로 쓸 만한 나뭇가지를 찾을 수 없었어요. 대신에 이 돌을 저한테 던지세요." 아이는 '엄마가 나를 아프게 하길 원하니까 회초리 대신 돌을 써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천진한 아이의 이 말이 엄마로 하여금 아이의 눈을 통해 상황을 보도록 만든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아들에게 한 짓이 무엇인지 깨달은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한참을 같이 울었다. 그 순간 자신이 했던 결심, 앞으로 절대로 아이를 때리지 않겠다는 서약을 잊지 않기 위해 그녀는 아들이 주워 온 돌을 버리는 대신 부엌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고 한다.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폭력에 반대합니다never violence 연설을 하면서 소개한 일화 p.209-210


아이를 때리면 체벌의 옹호자들이 '개선'이라고 해석할 당장의 표피적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 속에서 늘 그래왔듯 폭력은 더 많은 폭력으로, 그리고 더 크고 위험한 세대 간 단절로 이어질 뿐이다. p.210

지금 이 순간, 전쟁 중이 아닌데도 세상에는 잔혹함과 폭력이 가득하고 아이들도 여기에서 눈감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도 이 폭력을 매일 보고 듣고 읽습니다. 그리고 결국 폭력은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믿게 될 것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고 우리가 집에서부터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주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요? - 린드그렌 연설 중 p.211

"아동은 보살핌과 보호, 좋은 양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아동은 인격과 개별성을 존중받는 방식으로 다뤄져야 하며 체벌이나 다른 어떠한 모욕적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p.212

법 개정의 목적 자체가 체벌이 자연스럽고 양육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문화적 규범을 바꾸자는 거였으므로 스웨덴 정부는 법 통과 이후 이를 알리기 위해 대대적 캠페인을 펼쳤다. <체벌금지법>과 함께 체벌 대신 사용 가능한 훈육 방법을 설명하는 16쪽짜리 설명서를 자국어뿐 아니라 독일어, 영어, 불어, 아랍어 등 여러 언어로 만들어 아이가 있는 전국의 모든 가정에 배포했다. 또 두 달간 <체벌금지법>에 대한 설명을 우유병에 붙이도록 했다. 아동병원과 산전클리닉들도 캠페인에 참여했다. 그 결과 법안 통과 2년 후인 1981년엔 스웨덴 전체 가구의 99%가 이 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중략) 이는 모든 산업화된 근대국가에서 실시한 법률 지식에 대한 조사 중 가장 높은 비율이라고 한다. p.212-213

아동인권운동에 앞장섰던 폴란드의 교육자 야누시 코르차크는 "세상에는 많은 끔찍한 일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끔찍한 것은 아이가 자신의 아빠, 엄마, 선생님을 두려워하는 일"이라고 했다. p.217

 

부모의 체벌금지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체벌을 금지하는 법의 목적은 단순하다. 명백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매우 선명한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 폭력과 비폭력 사이에 아주 단순하고 선명한 줄을 긋는 것이다. 어른의 책무는 아이들에게 폭력이나 협박, 위협에 기대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며, 정부의 책무는 비폭력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p.217



라르스 트래가르드 '스웨덴식 사랑 이론'. 진정한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놓이지 않는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율적이고 평등한 개개인 사이에서만 사랑과 우정 같은 인간적 교류가 이루어진다. p.219

스웨덴의 중요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는 개인적 삶의 독립성을 보장하되 개인 삶의 질은 집단적 책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p.221

스위스 다보스 포럼의 노르딕 웨이The Noordic Way 발표 중 현대복지국가의 권력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비교가 나온다. 복지국가의 사회적 계약에서 드러나는 개인-가족-국가 간의 관계 유형을 비교해보니 미국은 개인-가족의 관계를 중시하고 독일은 국가-가족의 관계를 중시한다면, 스웨덴은 국가-개인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p.222

발표자들은 이처럼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가 중심에 있는 스웨덴 식의 사회적 계약 방식을 '국가주의적 개인주의statist individualism'라고 불렀다. (중략) 되레 국가는 시민들의 동맹으로서 개인의 자율성을 수호하는 조력자다. (중략) 어떤 학자들은 이 같은 스웨덴의 국가주의적 개인주의를 '차가운 신뢰cool trust'라고 불렀다. 친밀한 관계의 복종, 희생과 상호의존에 의해 형성되는 '뜨거운 신뢰hot trust'에 대비하여 개인의 자율성과 평등에 대한 남다른 강조와 공존하는 높은 사회적 신뢰를 일컫는 말이다. p.223

스웨덴의 엄마들의 유급 육아휴직은 1940년대에 도입됐으며 1970년대에 아빠들로 확대되어 부모휴가제로 바뀌었다. p.228 ; 스웨덴에선 이것들이 1970년대에 이미 이루어졌는데... 이 시점에서 50년이 되어가는 한국은 언제...

가족에서 '공'의 비율을 늘리는 공공성의 강화는 다음의 세 가지 이유에서, 즉 가족의 짐을 덜고,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기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 p.238


출산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우리 시대 최대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수준이 낮은 국가일수록 출산율이 낮다는 것이다. p.238 ; 음... 현재 사회에서는 경제활동 수준이 낮으면 생활이 안되는 사회가 되어버려서 공적 돌봄이 낮으면 그만큼 가족이 책임지고, 소득 수준도 낮아서 그런거 아닐까... 경제적 부담이 크게 다가오니까?


양육은 더 이상 '여성정책'이라고 불릴 게 아니라 남녀 불문, 기혼.비혼 불문, 가족의 형태 불문, 아이를 키우는 모든 사람이 지원을 받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p.239

캐나다 <온타리오 인권법>은 '가족 상황'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면서 '가족 상황'을 '부모-자녀 관계가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부모-자녀 관계'의 형태는 혈연이나 입양이 아니더라도 돌봄, 책임, 계약과 유사한 관계를 지닌 모든 상황을 아우른다.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p.240

아동수당을 선별 지급하면 수당을 받지 못하는 소득상위 10%를 걸러내는 데 들어갈 행정 비용과 사회적 갈등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제도의 근본 취지도 심각하게 훼손된다. 거의 모든 복지국가들이 운영 중인 아동수당은 모든 아이들이 부모의 성별, 재산, 혼인상태, 사회적 출신, 종교, 출생지 등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도 차별받지 않고 자라야 한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인식하자는 차원의 제도이다. (중략) 아동수당은 아이들의 시민권에 대한 공적 보장이고 모든 아동의 생존권과 건강한 발달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p.241-242

근대화 과정 자체가 뒤틀린 우리 사회에서 아이는 그저 '미래의 희망'일 뿐이다. 아이의 '현재의 행복'에는 별 관심이 없고 유년기 자체를 하나의 독립적인 인생의 단계, 시기로 간주하지 않는다. p.244


<유엔아동권리협약>이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제안한 해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중요한 가치는 가족의 보존이다. 태어난 원래의 가정에서 무리 없이 자라는 것은 아이에게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권리다. (중략)아이의 권리와 부모의 권리가 상충하고 부모가 아이의 안녕을 심각하게 침해할 때 선을 긋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다. 협약은 이 책임이 국가, 공적 권력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적 권력이 개입할 때의 기준은 '아동 최선의 이익의 원칙the best interest of the child'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이 다른 모든 인권협약들과 다른 점은 '아동 최선의 이익의 원칙'이 다른 모든 조항을 지배하고 협약 전체를 관장하는 '슈퍼 조항super right'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원칙은 공공이나 민간 기관이 아이들과 관련된 결정을 할 때 늘 '최선의 이익', 지금 이 아이에게 가장 조흔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하라고 요구한다. p.246-247

아이들에게 가족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부모-자녀는 생애의 가장 일차적 관계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 부모의 친권이 아이의 인권을 침해했을 때, 이 경우에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이 부모의 권리보다 우월하고 정당하다. 이게 '아동 최선의 이익의 원칙'이자 약자의 편을 들어줘야 할 공공의 역할이다. p.248

공감은 자신이 속한 내집단을 뛰어넘어 발휘하기 힘들다. 게다가 공통의 경험도 꼭 공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공감의 한계 때문에 심리학자 폴 블룸Paul Bloom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면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는 방식의 공감력 향상보다는 되레 한발 물러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도덕에 근거해 판단하는 이성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략) 기후변화, 고령화 사회 등에 대처하려면 미래의 추상적인 혜택을 위해 현재의 사람들에게 비용을 부과해야 하는데, 대체로 사람들은 막연한 대중의 고통, 미래의 큰 비극보다 특정한 개인, 눈앞의 아픔에 더 공감하기 때문이다. 254-255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정책과 규범이라야 한다. 그것이 제2의 본성이 되어 감정이입에 굳이 호소하지 않아도 되어야 한다. (중략)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의 선을 정하는 게 먼저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상해보는 공감의 감수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이를 개인의 도덕적 과제, 감성의 영역으로만 남겨두어선 안 된다. p.256

 


에필로그.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표지의 말로 이 책을 마무리.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공동체란 원래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고 가족주의가 팽배한 한국의 현실을 타파하는 또 다른 해법으로 제시한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공적 제도는 마을의 공동 책임이 아니라 아이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기초 위에 수립되어야 한다.(중략) 모르는 사람이 아이를 때리는 것을 보았을 때 항의하고 신고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더 약한 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인 것이지, 우리가 모두 이웃의 아이를 함께 지키는 대가족 구성원의 마음자리를 가져야 하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는 배우자를 폭행하는 가정폭력에 대한 해법으로 공동체의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 아동폭력도 마찬가지다. 생물학적으로 어릴 뿐 온전한 인간인 '작은 인간'에 대한 폭력과 인권유린을 없애는 게 우선이다. p.259-260

젊은 세대가 공동체에 가지는 강한 거부감은 각자 겪어본 공동체의 경험이 대체로 부정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사사건건 통제하고 간섭하며 구성원을 존중해주지도 않는, 수긍할 만한 원칙도 없고 권위를 가진 사람 마음대로인 폐쇄적 공동체들, 가족에서 학교, 회사에 이르기까지 겪은 부정적 경험이 공동체 일반에 대한 반감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아닐까. p.261

우리는 공동체 내에 관계 유지와 갈등 해결의 수단으로 작동하는 '공공성'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다. 우리가 겪어본 공공성이라곤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보살피고 약자의 편에 서는 정의로운 힘이 아니라 강자의 뜻을 관철시키는 완력이었을 뿐이다. p.262

"우리 아이들을 위해 촛불을 든다"라는 어른들에게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한 촛불을 드는 광장에선 '아이'가 존중받는 시민으로 설 틈이 없다. 성숙한 '어른'과 미성숙한 '아이'로 구분하지 말고 '우리 모두를 위한 촛불'을 들자"라고 화답하는 청소년들 p.265

 

각 개인들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기보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뻗어가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가족 안팎에서 '정상가족'의 숨 막히는 틀 대신 수평적 유대관계를 통해 아이들의 자율을 존중하고, 다음 세대에선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지 않는 개인들이 자라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p.265

현재의 나는 수명대로 살더라도 다음 세대가 없어 이 세계가 끝장난다면, 내 삶에서 더 나은 가치와 아름다움,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내일 지구가 정말로 멸망한다면 도대체 왜 사과나무를 심겠는가. 이건 성실성과는 다른 이야기다. p.266

내 혈연이 아니더라도 세대를 이어 인류가 계속 존재하리라는 기대가 사라진다면, 개인의 삶은 유한해도 나보다 더 크고 지속되는 전체에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다면, 그 모든 추구와 삶의 의미도 빛을 잃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미래의 낯선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존재의 의미를 다음 세대에, 아이들에게 빚지고 있다. p.267

 


부록. 더 읽을 만한 책들의 주관적 목록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아동인권도 앞선 역사에서 인간이 실현해온 평화화와 문명화, 인도주의 혁명의 두터운 토대 위에 놓여 있다. 곧 실현되지 않을 리가 없다. p.269

한국 가족, 철학으로 바라보다
책이 쓰인 지 5년이 지난 2017년의 시점에선 저자가 '서구 가족의 이슈'라고 제한한 아이들의 권리 존중과 법적 보호장치 마련, 비혈연 가정과 동성애 가정 등의 문제도 한국 가족의 이슈가 되어가고 있다. 얼마나 역동적인 사회인가. p.271

투게더
함께 작업하듯 몸을 움직이고 잘 들으려는 노력, 한마디로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반응하고 느슨하게 연대하는 기술이 협력이다. 그런 노력과 기술이 우리를 함께 살게 한다. 이를테면 "나는 당신의 고통을 느낍니다"보다 "나는 당신이 느끼는 고통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가 훨씬 나은 협력의 물꼬를 연다. p.274

 
 

 

 

 

 
실제 표지가 사진에 잘 잡히지 않는 색이라 한참을 붙잡고 보정을 했다.
책이 출판되는 모든 과정에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이 되어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내부 표지는 다르게 생겼고, 그 표지를 보이기 위해 구멍이 뚫려있다.

 

 

 

 

크래프트지 같은 겉표지에 내부 종이질도 약간 떨어져보인다. 덕택에 고오급 아이보리지보단 책이 가벼운 편. 갱지보다 약간 고급 느낌이지만 이런 종이도 좋다.

 

 

 

 

이런 띠지도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읽고 격려편지를 보냈다는 멘트에 혹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겉 표지를 벗겨내면, 밝은 색상의 표지와는 다른 느낌의 표지가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개, 고양이와 함께 사는 1인가구, 독거노인, 독박육아or미혼모, 가부장적인 가족, 100점이 아닌, 90점이라 체벌 받는 아이. 전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다. 이 표지를 찾다가 봤던 이미지 중 동성애자이며 다문화인 가정의 모습이 같은 그림체로 있었는데, 잘린걸까 싶다. 그런데 이 책, 17년에 출판된 책이다. 2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전형적인 "정상"가족을 다루는 SKY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하고 있다는 건 묘하다.

 

-프롤로그를 먼저 읽고 든 생각(을 순서대로)-

  역시,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이 아닌 사람이 쓴 글은 싫다. 문장의 길이가 어디까지 가는건지, 문장의 호응은 대체, 싶어서. 일해라, 편집부.
  여성의 피해사실은 나중에 얘기 좀 하면 안될까. 애들 얘기할 거라더니 왜 자꾸 껴넣는 것인지. 주제에 집중 좀 했으면 좋겠다. 피해의식에 찌든 사람이 뭘 하든 자신의 이야기로 가기 일쑤인데 그런 느낌이 조금 들었다. 이건 프롤로그 뿐 아니라 본문에서도 나오는 문제다. 그놈의 '여혐'무새. 프롤로그-목차-본문을 통해 프롤로그는 확 나눈 반면 에필로그는 본문이 끝나자마자 등장한다.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던거지. 꼭 하고 싶었던 얘기일 것이고.
  (본 주제로 돌아가서)(본문에서도 본 주제는 한참 뒤에 나온다.) 수 많은 사람들이, 받은 것이 체벌뿐이라 그게 아니면 교육을 못한다고 하는 것 아닐까. 물론 더 좋은 교육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배워나가면서 진행해나가는 사람은 잘 없다. 우선 닥쳐보니, 하다보니 하는 것일 뿐. 지금 목소리를 내는 세대층의 수많은 부모들도 그런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 부모들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걸 겪은 내가 힘들다.

 

  '정상가족'은 적정한 나이가 된 '한국인'성인남성과 '한국인'성인여성이 자식을 낳아 이룬 가정이며, 외부모, 조부모가정, 사실혼, 동성혼, 다문화가정 등 수많은 가정은 비정상가족으로 쉽게 규정하고 적절한 대처를 받지 못한 채 울타리 밖의 가정이 된 한국 사회를 비판한다. 정상이란 말은 많은 차별을 내포하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을 세우며, 그 기준에 벗어난 것은 비정상으로 쉽게 규정하고, 차별을 가한다. 모든 가족은 그 각자의 형태를 가지고 있을 뿐, "비정상"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는 수 많은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 책의 예상독자에 내가 속하지 않아 왜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지, 이런 걸 책까지 낼 필요가 있나 싶다는 것이다... 거기서 좀 더 생각이 나아가면, 수요가 있으니 냈겠지라는 것인데, 책을 낼 정도의 수요를 만들어 낼 사람 수를 생각하면 이 사회가 너무 환멸난다... 내겐 당연한 사고를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사는 이 사회가.

 

  아, 나는 글을 쓰는 버릇이 들지 않았다. 내용이 이어지지 않아 구역을 나누지 않으면 이상하다.

 

 

180806~190101

 

김희경 | 2017.11.21 초판 | 동아시아 | P.284 
ISBN 978-89-6262-209-6 (03330) | ₩15,000
비문학/사회학

이상한 정상가족 

김희경 지음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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