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성공담이 되어버린 아쉬운 소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3

2024. 12. 12. 17:53더욱/씁쓸한

평범하지만 치열하게

  4시 30분에 일어나 새벽 6시에 회사에 도착하고 출퇴근 시엔 책을 읽는 송 과장의 일상. 퇴근 후 아들을 재운 뒤 아내와 마주앉아 하루일과를 얘기하는 게 일과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너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냐?"

  정 대리의 결혼식 날이다. 권 사원이 송 과장에게 자신의 앞날에 대한 충고를 구한다. 송 과장은 잘 모르겠다며 자신이 답을 찾아왔던 과거를 회상한다. 송 과장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준비생일 적의 이야기다. 취업은 커녕 알바로 들어간 편의점에서조차 이틀 만에 잘린다. 고등학교 담임, 동아리 선배, 편의점 사장에게서 들은 말들이 떠오른다.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 아니 쓰레기라고 생각한 송 과장은 부모님께 간단한 유서를 남기고는 차를 타고 어딘가 박아서 죽기로 한다. 하지만 에어백이 터지는 바람에 죽지 않았다.

 

도, 레, 미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은 송 과장의 아버지가 아들이 자살시도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경찰에게 들은 충고대로 송 과장을 정신과에 데려간다. 정신과에서는 상담 후 송 과장이 피아노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간단하게라도 시켜보라고 한다. 외삼촌네서 얻어온 피아노로 밤낮없이 연주하던 송 과장. 엘레베이터에 조용해달라는 종이가 붙자 아버지는 달걀판을 얻어와 방음 작업을 한다. 이래도 시끄럽다고 한다면 더 얻어와서 더 붙이자고 아들 편을 든다. 아버지의 정성에 마음이 울리는 송 과장이다. 유튜브를 보며 독학을 하다보니 자신의 실력이 궁금해졌다. 음악학원 두 곳과 재즈바에 면접을 잡는다. 음악학원은 떨어졌지만, 재즈바에는 붙었다.

 

목표는 60억 보상받기

  송 과장은 정신과를 다니다보니 자신이 우울증과 ADHD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아지기 위해 열심히 상담도 받고 약도 먹는다. 차도가 보인다. 재즈바에서의 첫 공연도 그럭저럭 잘 해냈다. 집에 돌아가 컴퓨터를 켜보니 꽤 큰 외국계 회사에서 서류합격을 했다는 메일이 있었다. 면접도 그럭저럭 봤다. 손목이 아파 피아노 연습을 쉬던 어느 날, 부모님의 대화를 들으니 아버지의 친구가 토지개발로 60억을 보상받았다고 한다.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우직하게 일만 해온 아버지를 허탈하게 만드는 숫자 60억. 그 아저씨가 어릴 적부터 힘들게 살다가 보상받은 것이라는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니 자신도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지금까지 없었던 목표 또한 60억 보상받는 사람이 되었다. 신입사원 채용에 합격했다는 문자 한 통으로 변화는 시작되었다.

 

삶의 '가치'는 동등하지만 '질'은 다르다

  송 과장은 외국계 회사에 취업했지만 한국인과 독일인의 처우가 다르고, 내부용 이자와 고객용 이자를 따로 분리하는 걸 보며 무언가 사기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고 퇴사를 결심한다. 대기업만 골라서 지원을 하고 보니 두 군데에 최종합격을 했다. 최종 퇴사 통지를 한다. 지난 1년간 책을 사서 공부도 하고 돈도 최대한 절약해서 2천만 원을 모았다. 책값이 지출 2위에 있을만큼 나름 공부를 했다. 새로 취직한 대기업은 외국계보다 연봉이 조금 더 높았다. 앞으로 더 돈을 벌 것이다. 돈 때문에 인생이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 그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서.

 

돼지고기가 들어 있는 땅

  대기업에 취직하니 동기도 있고 부모님도 좋아하시는 눈치다. 효도했다는 기분을 느낀다. 돈을 아껴서 모아보니 스스로 성장함을 느꼈다. 남은 시간에는 책을 읽고, 주말마다는 본격적으로 땅을 보러 다닌다. 몇 달동안 책을 읽고 혼자서 임장을 다니며 독학을 했다. 벽에 다다른 기분이 들어 보러갈 땅 주변의 부동산에 연락을 해본다. 여는 곳을 찾아 방문한다. 첫 번째 부동산 사장님과의 대화에서 짧은 시간 동안 책에 없는 걸 많이 배운 느낌이다. 집에 도착해 서둘러 재즈바에 출근한다. 손님이 얼마나 왔나 둘러보는데, 정신과 의사가 찾아왔다. 일행도 있다. 환하게 빛이 나는 느낌이다. 지금 자신이 누군가의 겉모습만 보고 홀릴 때인가 생각하며 잠이 든다. 일주일 뒤, 선물로 빵을 챙겨 부동산을 방문한다. 사장님은 괜찮다며 단골인 듯한 김치찌개를 배달시킨다. 언뜻 보기에는 다 같은 김치찌개 같지만, 돼지고기가 바닥에 깔려 있는 김치찌개는 국물부터 다르다. 땅도 마찬가지다. 개발 압력과 개발 가능성, 그게 성패를 좌우하는 돼지고기다. 돼지고기의 유무를 분별해 내는 안목은 과거의 자료들을 살펴보면 된다.

 

나의 여신님

  주변 친구들이 전부 주식을 얘기한다. 하지만 모두가 결국 사는 건 부동산이다. 자신이 선택한 아이템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 박 사장님을 다시 찾아간다. 이번엔 떡을 사갔지만 피자를 사주신다. 피자 칼이 지나간 자리를 도로에 비유하며, 다른 도로들과 연결될 수 밖에 없는 도로 주변의 땅을 찾는 것이 본인의 일이라고 한다. 크러스트는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땅. 오늘 박 사장님의 강의 핵심은 도로와 입지다. 사장님과 헤어지고 보려고 했던 매물을 보러 간다. 왠지 걸어가고 싶어 버스를 타지 않는다. 매물에 가까이 갈 수록 보상이 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의 노란 깃발들이 가득하다. 다른 매물을 보러 간다. 축사가 있다. 온 김에 소를 구경하는데, 주인이 다음 달에 접는다는 정보를 준다. 종잣돈이 부족해 아까운 매물을 코앞에서 놓친다. 부동산은 역시 현장이다. 2주 뒤, 그녀가 또 왔다. 후광이 여전히 보인다. 인사하고 오라고 재즈바 사장님이 만들어준 자리에 듣고 싶은 곡이 있으면 연습해 올테니 문자를 달라고 연락처를 받는다. 뭐라고 저장할지 고민하다 '여신님'이라고 저장한다.

 

모든 꽃은 각각 피는 계절이 있다

  새로운 회사도 완벽하진 않았다. 외국계도 대기업도 각자의 장단점이 있다. 업무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 거기서 거기다. 박 사장님으로부터 매물이 나왔다고 연락이 왔다. 서두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땅 전문 부동산들은 바쁘지 않다고 안일하게 다음 날 갔다가 계약이 먼저 성사되어 매물을 놓친다. 집에 가는 길에 전 회사에서 한참 먹던 한솥을 들린다. 주인 아주머니가 자신을 기억해주고 있었다. 마음이 따스해진다. 다시 집으로 가려는데, 다른 부동산에서 전화가 온다. 바로 계약을 하러 간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첫 계약을 이루어낸다. 그렇게 서서히 투자를 늘려나갔다. 모아놓은 수천 장의 자료들도 결국 다 보았다. 기나긴 과정이 지나면 결실은 어느 순간 찾아온다.

 

오피스텔 < 월셋집 < 자가

  1년이 지났다. 결혼도 했다. 15평짜리 오피스텔에 산다. 신혼은 월세로 시작했다. 전세금은 최소 1억원은 있어야 한다. 그 돈이면 종잣돈으로 쓸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을 생각하면 전세금은 보관이라 말할 수도 없다. 월세 50만 원이 1년이면 600만 원, 10년이면 6천만 원이다. 하지만 10년간 아파트나 땅이나 6천만 원은 넘게 오른다. 5년이 지나 대리가 되었다. 자가를 결심하고 부동산에 가는 길, 트럭에 치일 뻔했다. 초심을 되찾고 박 사장님을 찾는다. 역시나 소유한 것을 어떻게 자산으로 만드느냐와 같은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문득 사장님께 묻는다. 경제적 자유를 이룬 것 같으신데 일은 왜 계속하시는 거냐고. 진짜 경제적 자유는 재정적인 여유와 정신적인 자유가 합쳐져야 한다는 대답을 들려준다. 집에 대해 공부를 하려니 또 다른 멘토가 필요해 고등학교 동창인 설렌 버핏을 찾는다. 그는 통화량, 소득, 경제상황을 얘기한다. 입지가 좋은 구축 아파트와 상대적으로 덜 좋은 신축 아파트가 있다면 어디를 택할 것인가? 이후를 생각하면 무조건 전자라고 한다. 그래도 새 아파트에 살고 싶다면 입지 좋은 집을 전세를 끼고 사두고, 다른 새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면 된다고. 그렇게 주택, 특히 아파트에 대해 계속 공부하니 알게 모르게 회사에서 부동산 투자자로 소문이 나 있다. 자산격차가 벌어질 것이 걱정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집을 사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땅을 사란 말은 하기 어렵다. 허허벌판 뿐이고 아파트 같은 형체가 없다. 어쩌면 그래서 더 기회가 있다.

 

투기꾼인가 투자자인가

  5년이 지났다. 이젠 과장이다. 삶의 목표는 '60억 보상받기'에서 경제적 자유로 바꿨다.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하여.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늘 나를 믿었다.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결과가 나쁘더라도 내가 한 선택이기 때문에 억울하지 않다. 행여나 억울할 것 같다면 억울하지 않을 만큼의 노력을 하면 된다. - p.266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에 집착하는 것, (중략) 이런 가정들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다. - p.278

 

  부동산이 상승하자, 모두가 부동산 이야기만 하고 있다. 동기 셋은 어떤 것이 투기고 어떤 것이 투자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투자와 투기는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에 따라서 갈리는 것 같다. 투기꾼은 노력하지 않으려고 하고, 귀찮음과 힘듦을 피하려고 한다. 단언하건대 성공으로 가는 순간이동이나 축지법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 자유에 대하여

  송 과장은 오랜만에 친구들끼리 만났다. 만난 네 명은 모두 회사원이다. 모두 회사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각자 살아가는 방식, 추구하는 가치, 선택하는 기준에 따라 다른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박 사장님은 전체 시장에 대한 예측은 어렵지만 사지 말아야 할 것을 확실하게 알려준다고 한다. 유령회사 주식, 지역주택조합, 신도시 상가, 호텔 분양. 다음 날, 정 대리가 지역주택조합을 얘기하자 진지하게 말린다. 

  선택하는 것에 대가와 책임이 따르고, 선택하지 않는 것에도 대가와 책임이 있어. 가만히 있는 것도 가만히 있기로 본인이 선택한 것의 결과거든. - p.334

 

  몇 달 뒤, 지역주택조합장이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뉴스를 정 대리가 보여주며 공차를 쏘겠다고 한다. 퇴사한 권 사원도 같이 모였다.

  지금까지 인생은 몇 번 몇 번 고르는 객관식인 줄 알았는데요. 알고 보니 제가 직접 쓰고 고칠 수 있는 주관식이더라고요. - p.352

 

  후배들이 경제적 자유에 대해 물어본다. 송 과장은 지금까지 자신이 느낀대로 얘기해준다. 맥주 한 캔과 함께 오랜만에 아내와 깊은 얘기를 하고, 일어나서 평소와 같이 출근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일기 대신 블로그에 글을 써볼까 한다. 김 부장님.

 

 

  1권에서 극에 달하고 2권까지도 하이퍼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한 풍자소설이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자전적 이야기를 쓰다보니 그런 것인지? 3권은 성공담/자기계발에 가까운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시점도 어느 순간부터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송 과장이라는 캐릭터가 자신만 잘 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잘 되는 걸 바라는 사람이라 작가가 본인을 투영한 게 맞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대신해서 하는 거겠지만... 그럴 거면 자기계발서나 성공담을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긴 그러면 지금의 선풍적인 인기는 얻지 못했을지도. 1, 2권에서 본 신랄함을 원하던 사람(=나)에게는 3권이 이질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241126

 

송희구 | 2021.11.19. 초판 | 서삼독 | P.367

ISBN 979-11-65-34422-1 | ₩15,000

문학/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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